For The Record 130

주치의, 고민

하루에 신환 한 명씩, 그래서 현재 내가 주치의로 등록된 환자는 세 명. 한 명은 단기 항암 치료 환자, 다른 한 명은 조직검사 위해 입원한 환자라서 별 어려운 건 없는데 처음 받은 환자는 건강검진에서 당뇨 있다 듣고 초기 관리 위해 입원한 그야말로 '쌩신'. 덕분에 학생때도 안하던 공부를 뒤늦게 하고 있다. (거의 다 병동 주치의 선생님과 펠로우 선생님 말을 듣고 결정하는 거지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책임감도 생기고, 배우는 것도 있고, 보람도 있고. 그래, 아직까진 괜찮아. 할 만 해. 나름 재미도 있어. 그러나... 이것도 몇 명 안 될 때 얘기지- 내년부터 환자를 떼로(?) 볼 생각을 하니...후- 이래저래 어느 과를 가야 할 지 점점 고민이다... 이제 슬슬 마음을 정해야 할 때인데.

For The Record 2008.09.03

easy come, hard go

한 달 간의 집 공사가 끝나고 이제 슬슬 정리되어 가는 이 마당에 신경쓰이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책장 가장 아랫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생명과학부 시절의 전공서적들... 내가 앞으로 이걸 볼 일이 있겠어? 나온지 벌써 7,8년 된 책이고 벌써 개정판도 몇 차례나 나왔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쑥 훑어보니, 이건 뭐, 별로 공부도 안 했네... 책이 깨끗해!... 버려야겠다, 고 생각하며 다 꺼내어놨는데 막상 버리려니까 또 아깝네... 이쪽 계열 책들이 표지가 예쁜 게 많아서 은근 장식에도 도움이 되고... - 아 참으로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여 - 항상 느끼는 거지만, 모으는 건 쉽고 버리는 건 어렵다.

For The Record 2008.08.31

예진실 인턴의 하루

예진실 인턴은 무엇을 할까? 그 첫 번째 시간. 환자가 뜸한 시간에, 예진실 인턴은- 계속 환자 명단을 확인한다. EMR의 '환자선택'에서 주기적으로 "조회"를 클릭. 신환이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 환자의 주치의가 누구였는지. 1. 신환이 없으면 하던 일 하면서 클릭 클릭 클릭 클릭- 2-1. 마지막 환자의 주치의가 나와 같이 일하는 선생님이면 편안하게 룰루랄라- 2-2. 그렇지 않으면 - 다음에 오는 환자는 내 환자구나 - 아직 환자가 오지도 않았는데 마음을 짓누르는 이 불안감...예기불안?! 환자도 없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즐겁게 하던 일을 할 수가 없다. 3. 환자가 오면 긴장하며 환자 받을 준비. 수진이력을 보면서 과거 병력을 파악하고 - 복잡한 환자는 피곤해요 - 간호사들의 초기문진을 들으면서 방..

For The Record 2008.08.15

커피 한 잔

매우 드물게 네시 반 정도에 수술장 일이 끝나서 - 정확히는 더 이상 내가 일하는 64병동 환자가 없었기 때문에 - (당직실에서 쉬지 않고!) 병동에 쌓인 일을 처리하고 나니 너무 졸려 - 사실 오전 8A 수술이 복강경 수술이라 당직실에서 거의 3시간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 글로리아 진스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카운터 앞에는 4월에 보라매 ER 내과 담당 중 한 분이었던 3년차 K 선생님이 계셨다. 나는 당직식권을 열심히 뜯으면서 못본 척 하고 있었는데 K 선생님은 나를 발견하고 이리 오라며 오랜만에 만났는데 한 잔 사주겠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원 샷 추가를 하고 싶었지만, 얻어먹는 마당에 추가까지 하긴 뭣해서. K 선생님 曰, '이젠 좀 잘 하나? 흐흐' ER에서 많이 혼냈지만 자기도 인턴때 ER에..

For The Record 2008.07.23

짜증나는 밤

#1 일 하나 하고 당직실에 와서 침대에 누우면 다시 콜이 오고 또 다시 가서 하고 오면 다시 콜이 오고 벌써 수 차례 반복하고 있다 #2 내일 들어갈 수술방엔 수술이 6개, 게다가 내가 일하는 병동 환자가 마지막이어서 끝까지 있어야 한다. 앞에 다섯 명은 다 다른 병동 환자... #3 아무래도 나는 별로 호감가는 인간이 아닌가 보다. 누구에게도 별 임팩트가 없는 그런 존재. 지쳤다. 그냥 포기하고 살랜다.

For The Record 2008.07.15

Q

#1 마취과에서 내는 방송은 네 가지가 있다. R,Q,H,A. R은 뭐더라?...recovery 인가?...아무튼 환자 깨워달라는 뜻이고 Q는 'Question', H는 'Help', A는 'Arrest' 를 의미한다. R은 인턴들이나 내는 방송이고 (전공의들은 다들 자기가 깨우니까) Q와 H가 좀 애매한데 아직까지 H나 A는 들어본 적이 없고, 말이 QUESTION이지 보통 무슨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 교수님 이하 나와있는 모든 전공의들이 빛의 속도로 달려오게 되고. 사실 Q도 보통은 인턴들이 많이 내는데 지난 번에는 전공의 선생님이 들어간 방에서 Q가 떴었다. 수술 도중 애기가 urticaria 생기면서 아마 arrest 직전까지 갔던 모양이다. 전공의 방에서 Q가 뜨는 건 진짜 대박이란 말이 ..

For The Record 2008.06.27

허당 선생

착하고 성실한데 뭔가 부족해- 5월, 수술이 끝난 후 보라매 비뇨기과 치프선생님이 웃으며 하신 말씀. 어제, 또 이 말을 떠올려 버렸다. 어제 들어간 수술방은 정형외과방. MIBP (평균혈압) 를 60-65 사이로 맞춰줄 것을 요구하였고, 처음 시작때까진 잘 조절이 되었다. 그러던 것이 본격적으로 째고 깨기 시작하면서 80대로 치고 올라가기 시작- 일단 걸고 있던 수액 최소로 잠그고 혹시 통증에 반응하나 싶어서 sevo도 올려보고도 하였으나 역부족. 눈에 띄는 labetalol은 적정용량을 모르니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고... 결국 밥 먹으러 간 사이에 교수님이 labetalol과 fentanyl로 제압하셨다. 혈압을 낮춰놓으니 이제는 떨어지는 게 문제- 3-way가 여러 개 달려있고 거기에 있는대로 수..

For The Record 2008.06.17

공의 경계를 읽기 시작

월요일에 공의 경계 극장판 1편 '부감풍경'을 봤는데 소설을 읽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극장판은 그 작품의 팬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친절하게 관객들에게 설명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 관객들에게 있어서 극장판은 좀 불친절하게 느껴질지도. Type-moon이 지향하는? 아니 전문으로 하는 세계를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방대하게 그려낸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 이후 Type-moon의 성장과 함께 세계관도 점점 세련되게 다듬어져 Fate에서 그야말로 절정에 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공의 경계-월희-Fate 순서로 나왔는데 나는 Fate-월희-공의 경계 순으로 접했고, 셋 다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하고 원작을 찾았네. 공교롭게도 모두 Retrograde 한 접근인데, 이해하는 ..

For The Record 2008.06.11

Angelus씨 광화문에 가다

촛불때문에 간 건 아니고... 책 사러... 책을 사고 그냥 가려다가, 지상으로 올라가봤다. 정말 흉물은 흉물이다... 다들 사진찍느라 정신없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진짜 뜻이 있어서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구경 온 사람도 있고... 별 생각없이 사는 내가 봐도 참... 씁쓸하구나. 컨테이너 박스, 광화문 및 주변 역 무정차 통과... 고작 생각해낸 대응책이라는게... 한심스럽다. 이 정도 수준이니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는게지.

For The Record 2008.06.11

홍대 앞, 그리스 음식점 - Greek Joy

지도교수 모임으로 홍대 앞 그리스 음식점 "Greek joy" 에 다녀왔다 생각보다는 아담한 규모의 음식점이었다. 인테리어도 화려하지 않고 하얀색 페인트로 마치 회칠한 느낌이었다. 그리스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 동네 집들은 대부분 이런 색이겠지? 티비에서 보는,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식 주택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내부 장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식사는 메뉴판에는 없다는 dinner 코스로- 7-8종류의 음식이 나왔던 것 같다. 그리스 음식이라고 해서 좀 독특할까 했는데 생각만큼은 아니었다. 맛은 아주 반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괜찮은 수준이었고, 해산물과 토마토를 많이 이용해서 그런지 느끼한 건 덜했다. 음식들이 예쁘게 나와서 더 먹음직스러웠다. 사진기를 가져가지 않은 게 조금 아..

For The Record 2008.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