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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혈모세포 채집에 대한 단상

Angelus 2015. 12. 24. 23:43

'성덕 바우만' 이라는 분이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미국내에 맞는 사람이 없었고, 우리나라에 그 사연이 전해져 조혈모세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적합한 공여자가 나타나서 잘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아는데... 


문제는 그 에 기증자가 후유증으로 고생한다는 듯한 뉘앙스의 잘못된 기사들이 나면서 일반인들이 이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고,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확 줄었다는 것. 조혈모세포 기증을 위해 입원했는데 가족이 찾아와서 뺨을 때리고 강제로 데려갔다던가 하는 일화도 구전되고 있을 정도이니... 지금은 그 때 보다야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조직적합항원이 맞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증을 거부하여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아직도 종종 본다. 

 

아직도 '조혈모세포 채집, 조혈모세포 기증' 하면 골수를 뽑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물론 조혈모세포가 골수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이를 얻기 위해서 꼭 골수를 '모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대개 말초 조혈모세포 채집을 한다. 물론 골수에서 직접 채취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아주 드문 일이고 보통은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위한 채집과정에서 하게 된다. 자가조혈모세포 채집의 끝판왕격인 시술이라고나 할까. 혈액병동에서 근무하면서, 아니 내과의사로 살면서 이 시술 - 흔히 BM (Bone Marrow: 골수) harvest 라고 불린다 - 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짧은 혈액병동에서의 근무 동안 이 시술이 생기면 그저 박복하다고밖에... (참고로 어쩌다보니 혈액/이식병동 주치의와 혈액교수님 밑에서 일하는 턴을 총 다섯 번 했는데 그 5개월 동안 한 세 번 정도 들어간 것 같다...)


그럼 말초 조혈모세포 채집은 어떻게 하는가? 전체과정은 굉장히 간단하다. 조혈모세포 공여자가 되실 분은 보통 시술(채집) 전 3일 전부터 전날까지 G-CSF라고 하는 백혈구 촉진제를 맞고, 스테로이드의 한 종류인 dexamethasone을 복용한다. 백혈구 촉진제를 맞으면 골수에서 조혈모세포들이 증식하게 되고, 증식한 조혈모세포들이 말초혈액으로 흘러나오게 되는데 이를 보통 mobilization 이라고 표현한다. 


D-1에 공여자가 입원하면 몸상태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큰 문제가 없다면 D0에 헌혈실에서 혈장반출술을 시행한다. (사실상 헌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후에 조혈모세포가 얼마나 모아졌는지 조혈모세포 표면에 발현된 CD34라는 물질의 양을 측정하여 간접적으로 파악하게 되고, 그 양에 따라 하루에 끝날 수도 있고 이틀 정도 하게 될 수도 있다. 채집이 다 끝나면 빈혈, 혈소판 감소증, 전해질 이상 등의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게 되고, 대부분 특별한 문제없이 퇴원하게 된다. G-CSF를 맞으면 전신의 애매모호한 통증이나 열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긴 하지만 투약이 끝나면 그런 증상들은 거의 바로 없어지게 되고, 그 외에 특별히 주의해야 할 부작용은 별로 없다고 보면 된다. '후유증' 같은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조혈모세포 이식은 혈액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요, 완치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하다시피한 방법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항암치료가 길고 힘든 여정이긴 하지만, 특히 혈액질환은 한 번의 치료기간이 상당히 길고, 그 사이에 여러가지 합병증의 위험도 크다. 쉽게 말해 골수가 밭이요, 거기서 나오는 혈구세포들이 작물이라고 한다면 작물이 이상하니까 밭을 싹 갈아엎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서는 그야말로 골수를 '완전히 말린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고강도의 전처치를 한다. 그만큼 환자들에게는 절박하고 간절한 치료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