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Fever Pitch

[갈무리] (2005.2.) 아스날 vs. 맨유 - 아스날은 없다!

Angelus 2011. 1. 1. 16:31
경기 전부터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른 상태였다.

선두 질주중인 첼시에 10점을 뒤지고 있는 2위 아스날과 한 점차로 아스날을 쫓고 있던 맨유. 이 경기에서 지는 팀은 사실상 타이틀 경쟁에서 탈락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번 맞대결에서 50경기 연속 무패에 도전하던 아스날은 맨유에게 2대 0으로 발목을 잡혔다. (새벽에 미생물 공부하면서 기숙사 티비로 봤었지.) 당시 웨인 루니가 솔 캠블에게서 얻어냈던 페널티킥이 헐리웃 액션이었는가에 관한 논란으로 들끓었다. 최근에는 두 팀 감독들간의 설전이 신경전의 수준을 벗어나 사감까지 개입되며 서로간에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졌었다.

두 팀의 경기는 항상 일촉즉발의 분위기에서 시작했고 언제나 사고가 터지곤 했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양팀 선수들간 충돌은 말할 것도 없고 경고 6명에 퇴장 1명.

시작하자마자 아스날의 파상공세가 이어지더니 7분만에 앙리의 코너킥에 이은 비에이라의 헤딩골이 터졌다. 키가 작은 에인세가 비에이라의 힘과 높이에 밀렸던 것 같다. 그러나 10분 후 스콜스의 크로스, 루니가 감각적인 원터치로 연결. '왼발의 달인' 긱스의 왼발에 정확히 걸렸고, 수비 몸에 맞는 행운까지 겹치며 동점.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거듭하던 전반 막판. 플라미니의 패스를 받은 앙리, 공을 홀딩하다 페널티박스 오른쪽으로 돌아들어가는 베르캄프에게 타이밍을 딱 맞춰 절묘한 패스, 베르캄프 주저없이 통렬한 오른발 슛. 맨유 골키퍼 로이 캐롤의 다리 사이로 빨려들어가는 멋진 골! 정말 베르캄프는 축구의 신이다. 오오 베르캄프... 35살에도 저렇게 멋진 경기를 할 수 있다니. 베르캄프는 물론이고 아스날의 정교함에 대한 감탄과 한편으로는 맨유가 대패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교차했다. 그렇게 전반을 마감.

그러나 나의 걱정은 결과적으로 기우였다. 맨유는 거칠게 압박을 가하면서 아스날 선수들을 흔들었고 결국 후반 10분에 동점골이 터졌다. 이번에는 크리스티아누 로날도였다. 중앙에서 긱스가 절묘하게 왼쪽으로 찔러주고 달려들어오던 로날도의 슈팅. 각도가 별로 없었는데, 역시 7번을 괜히 다는 게 아니었다.

이후 분위기는 맨유쪽으로 넘어갔다. 재차 맞은 공격찬스에서 루니의 프리킥이 포스트를 맞고 튀어나오더니, 동점골이후 불과 4분만에 역전골이 터졌다. 이번에도 긱스와 로날도의 합작품이었다. 긱스가 오른쪽으로 질풍같이 드리블해 들어갔고 아스날의 알무니아 골키퍼는 이를 막기 위해 골문을 비우고 나갔다. 따라붙던 솔 캠블과 알무니아까지 제친 긱스는 오른발(!)로 길~게 크로스, 텅빈 골문을 향해 돌진하던 로날도가 가볍게 밀어넣어 역전.

그러나 맨유에겐 위기, 아스날에겐 기회가 찾아왔으니 바로 중앙수비수 실베스트리의 퇴장이었다. 실베스트리가 베르캄프를 넘어뜨렸고 다가와서 따지던 륭베리마저 박치기로 제압했다. 심판 바로 앞에서. 주저없이 빨간 딱지를 꺼내든 우리의 그레이엄 폴 주심.

퍼거슨 감독은 로날도를 빼고 결정적일때 삽질하기로 유명했던 '한때 유망주' 웨스 브라운을 투입하며 지키기에 나섰다. 그러나 아스날은 끝내 기회를 잡지 못했고, 종료 직전 오히려 존 오셔에게 쐐기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알무니아 키퍼의 키를 넘기는 감각적인 로빙슛이었다.

무려 5분간의 인져리 타임 후 경기가 끝났다. 역시 벵거 감독과 퍼거슨 감독은 악수도 나누지 않았다.


양팀 모두 25경기를 치룬 가운데 맨유가 53점, 아스날이 51점. 그러나 선두 첼시는 61점이고 한 경기를 덜 치룬 상태이다. 여전히 첼시는 멀리 있다. 현재 첼시의 상승세를 막을만한 팀이 없어보인다. 그래도 아스날이 우승하는 것보단 차라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