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Record

화이자 백신 후기

Angelus 2021. 4. 6. 11:49

* 개인적인 경험임을 밝힙니다.

 

#1.

간헐적으로 코로나환자 진료에 관련되어 있었기에 (입원환자 배정이라던가... 생활치료센터 파견이라던가...) 백신 수요 조사시 진료 의료진 중 한 명으로 분류되어, 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직장 화이자 백신 접종 대상자에 포함되었다. 3월 둘째 주에 이전 직장을 방문하여 1차 접종을 받았고, 정확히 3주가 지나서 4월 첫 주에 2차 접종을 받았다. 

해외에서의 접종 상황을 통해 알려진 바로는 아스트라제네카는 1차 접종 후가, 화이자는 반대로 2차 접종 후가 상대적으로 힘든 편이라고 했다. 주변에서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지인들은 상당수가 1차 접종 후 짧게는 하루, 길게는 3-4일까지 근육통과 간헐적인 발열, 피로감/무기력함을 겪으며 아세트아미노펜 혹은 NSAIDs를 규칙적으로 복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 반면, (소수이기는 했으나) 화이자 백신의 경우 접종 받은 쪽 윗팔/어깨 통증과 가벼운 피로감 정도의 불편함을 느꼈다는 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나도 1차 접종 다음날에는 접종 받은 왼팔 어깨의 통증 말고는 특별한 증상은 없었는데, 다만 조금만 어깨를 들어올리려고 해도 뻐근함이 느껴져서 어느 순간부터 로봇 춤(언제적?)처럼 팔꿈치 이하만 까딱까딱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 물론 오른팔은 멀쩡했으므로 큰 물건을 들어올리는 것 이외의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거의 없었지만...  

 

#2. 

1차 접종 때는 접종 후 원하는 사람에 한해 타이레놀 두 알 정도를 가져갈 수 있게 했는데 2차 접종 때는 생수 한 병에 이틀치 정도의 타이레놀을 붙여서 모든 접종 인원에게 제공했다. 아마도 2차 접종 후에는 더 힘들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으리라. 

오후 4시 조금 못되어 2차 접종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으려니 세 시간 반 정도가 지나고나서부터 (어깨의 뻐근함은 디폴트+) 머리가 묵직하고 1차 이후에는 느끼지 못했던 약간의 열감과 함께 식은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해서 타이레놀 한 알을 복용했다. 타이레놀 복용하고 나니 (당연하게도) 괜찮아지는 듯해서 평범한 금요일 밤의 일상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에 자꾸 깨기 시작했다. 뭔가 불편하긴 한데,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는 그런 상태로.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중 여섯 시 넘어서부터는 조금씩 심해지는 왼쪽 윗팔 통증과 함께 으슬으슬하고 조금만 건드려도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계속 뒤척이면서 '으으으으....' 하고 신음하고 있으니 와이프가 NSAID와 PPI 하나를 가져다주면서 "그러게 밤에 먹고 자라니까 말을 안 들어!" (...죄송합니다...) 

약 먹고 다시 두 세 시간 정도 자고 깨니 약간 몸이 젖어있는 게 식은땀이 났던 것 같지만 컨디션은 좋아졌다. 가볍게 집안일을 하고, 퇴근한 와이프와 함께 점심을 먹고 집근처 구립도서관에 방문하여 책 두 권을 빌리고 돌아왔다. 저녁 먹기 전까지만 해도 컨디션이 괜찮아서 다 지나간 줄 알았는데... '약 안 먹어도 되겠어?' 라고 묻길래 '괜찮은 것 같아!'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했는데... 빈센조 시작할 무렵부터 다시 약간의 열감과 함께 무기력이 몰려오고 이전에는 없던 더부룩함까지 동반되면서 NSAID + PPI+ prokinetics 3종세트를 복용한 뒤 (또 혼났다...) 드라마도 못보고 게임도 못하고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반으로 접힌 자세로 누워서? 엎드려서?  으으으으... 하다가 잠들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엔 컨디션이 충분히 회복되어 일어나자마자 커피 한 잔 후딱 내려 들이키고, 원래 계획대로 집 근처 이마트에 가서 (랜더스데이 마지막날이었음) 행사상품 위주로 쟁여놓을 생필품들을 사가지고 오니 이제 막 12시(!) 평소같았으면 느지막히 일어나서 밍기적대다 브런치 하나 만들어먹고 늘어져 있었을텐데, 날씨도 좋고 하루도 길고... 메데타시 메데타시~

 

#3.

1차를 수월하게 견뎌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2차 접종 후에는 내가 지금 쉬고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하루를 보냈다. 물론 2차 접종 후에도 괜찮았다는 친구들도 있어서 감수성의 개인차를 고려해야겠지만, 백신 접종 후 저녁부터 다음 날까지는 컨디션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타이레놀 혹은 이부프로펜 같은 NSAID를 적절히 복용하고, 여건이 된다면 미리 일정을 잘 조절해서 다음 날은 쉬는 방향으로 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백신 휴가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 같은데, 정말 백신 휴가를 써도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직장에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잘 뒷받침해줘야 할 것이다) 나야 운이 좋게도(?) 화이자를 맞아서 그나마 조금 고생하고 넘어간 것 같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로서는 AZ 백신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이고 AZ 백신 후 겪을 수 있는 부(副)작용('아닐 부(不)'가 아님에 유의하세요)의 정도는 화이자보다는 더 심할 가능성이 높아보이므로.

희한한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서 다음날 고생의 유병률이 높다는 것인데, (AZ 백신 맞은 관료들이 맞고 다음 날 고생했다는 기사들은 읽지 못하였음) 이게 실제 젊은 사람들에게서 빈도가 높은 것인지, 아니면 젊은 사람들일수록 SNS와 가까워서 나처럼 무용담(?)을 늘어놓을 확률이 높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publication bias 처럼 힘들었던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좋게좋게 넘어간 사람들은 별 말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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