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Record

조금은 식은땀이 났던 하루

Angelus 2016. 6. 3. 22:39


#1.  

금요일 오후 내시경 세션에는 가끔씩 감염 관련 환자들이 내시경을 받으러 온다. 주로 HIV+ 인 환자들이 많고, 가끔씩은 설사와 관련된 Clostridium difficile, 또는 VRE(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을 가진 환자들도 있다. 분비물 접촉에 의한 이차 감염을 막기 위해 전용 내시경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검사에 관여하는 모든 의료인들은 보호 장구 및 덧가운을 착용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은 일반 환자들이 모두 검사를 받은 뒤에 시행하게 된다. 여러모로 제약이 있다보니 해당 환자들을 2주마다 한 번씩 금요일 오후 세션에 몰아서(?) 검사를 하고,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같이 시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보통은 오후 위내시경 세션에 들어가는 전임의가 같이 하는 편이다. 


금요일 오후 위내시경 세션에 들어갈 때마다 HIV 환자들이 꼭 한 명씩은 있는 것 같아서 오늘 스케줄을 살펴보니 지금까지 14번의 오후 위내시경 세션중 내가 6번을 들어갔네. 그러다보니 내시경실 직원들은 오늘 HIV 환자 내시경이 있는데 역시나 오후 세션은 angelus 선생님이네요 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분과를 정할 때 소화기와 감염 분과 중에서 약간 고민하다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아 감염은 안 될 것 같아 소화기를 했지만, 전공의 시절 감염 병동 주치의 넉 달에 로테이션 한 달을 했었고 어쩌다보니 감염 환자 내시경이 나한테 몰리고 있어 동료 전임의들과 내시경실 직원들은 농담삼아 나보고 '감염의 서자' 라고 하는데... 


절대로 그 환자들이 귀찮은 건 아니고, 아무래도 local에서는 내시경을 자유롭게 받을 수 없을테고 결국 여기같은 종합병원에서 받아야 할테니 내가 아니면 누가 해주겠어? 내가 올해 전국에서 HIV 환자 내시경은 제일 많이 하지 않았을까? 라는 같잖은 생각도 가끔 하면서 보람을 찾고 있다. 아무튼.


#2. 

오늘 환자는 한 명 이었는데, 내시경을 기다리던 중에 갑자기 복통이 너무 심하다며 힘들어해서 이송침대에 누워있었다. 기록을 보니 보름 전부터 상복부 통증이 있었고, 두 번 정도 통증이 너무 심해서 응급실을 방문했었다. 검사 권유를 받았지만 약 투약 후에 통증이 호전되어 추가 검사 거부하고 자의퇴원을 반복했다. 환자를 검진하니까 상복부의 동통이 있긴 한데 병력상 당뇨도 있고, CRPS도 있다고 쓰여있어서 음... 


기본 vital sign을 체크해보고 큰 이상은 없길래 검사실내에서 일단 몇 분 정도 관찰했더니 조금 통증이 나아졌다고 하길래 환자랑 상의하고, 검사를 진행하는데에 동의해서 내시경을 넣었다. 별거 없겠지? 하면서...


들어갔는데 위 전체에 검은색으로 과거 피가 났었던 흔적들이 묻어있었다. 아. 뭔가 있겠구나. 조심스럽게 들어가다보니 전벽에 커다란 궤양이 보인다. 지켜보던 다른 직원들 모두 정말 아팠겠다. 이래서 아팠구나... 십이지장으로 들어가 십이지장이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 뒤로 내시경을 빼며 전벽의 궤양을 자세히 관찰하는 순간,


궤양의 중심부위에 아주 작게, 뭔가 반짝이는, 궤양의 기저부와는 조금 다르게 생긴 이상한 게 보인다. 환자는 궤양이 심해서 천공이 생긴 것이었다. 오 젠장. 이걸 어떻게 참았던거지?... 궤양과 천공 부위에 대해 사진을 찍고, 최대한 위 내부의 공기를 빼면서 내시경을 회수하고 환자를 응급실로 보냈다. 운동 다녀와서 기록을 확인하니 응급수술에 들어간 것 같은데, 어떻게 될런지. 


 


 

'For The Record'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기 싫다  (0) 2016.08.21
인스타그램  (1) 2016.06.29
소소한 우울함  (0) 2016.05.01
자율학습  (0) 2016.04.10
벼룩의 간을 빼가라  (0) 2016.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