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Record

전문의 시험을 마치고.

Angelus 2016. 1. 26. 16:43
1차 시험이 꽤 쉬웠던 탓인지 2차 시험은 실제로도 어려웠고, 체감난이도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 시험 당일 잠을 잘 못자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느낌이 있었던 탓도 있고, 화면을 보고 푸는 문제여서 한 문제당 주어지는 1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가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할 수 없고, 답을 한 번 잘못 쓰면 수정할 수 없다는 핸디캡 아닌 핸디캡이 주어지긴 했지만, 4년간 수련하고 마지막 두 달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 물론 열심히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 확실하게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물론 뭐 시험을 통과하는 데에는 큰 문제는 없었(다고 믿고 싶)지만... 

본과 4년, 인턴 1년, 군의관 3년, 레지던트 4년을 합치면 12년이다. 12년 동안 공부해서 도달한 수준이 고작 이 정도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한심하다. 


내과 의사로서의 삶이 아닌 '소화기내과 의사'로서의 삶을 몇 년간 살게 되면 이렇게 힘들게 쌓아올린 지식 - 아마도 현재의 의학 지식 수준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넓다고 말할 수 있겠지 - 도 어느새 사라져버릴 것이고, 다시 내과 의사로서의 삶(이라고 쓰고 감기과 의사라고 읽는다)을 살게 될 때 쯤엔 그 때 또 필요한 지식들을 습득하기 위해 아둥바둥 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머리속에 구겨넣은 지식이 제대로 활용할 틈도 없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니 허탈하기도 하다. 지금 쌓은 지식은 어차피 몇 개월만 지나면 시대에 뒤떨어진 죽은 지식이 되어버리겠지만, 아무튼.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참 싫지만 어찌하리오. 공부가 그나마 제일 쉬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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