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Record

농촌 진료 후 단상

Angelus 2014. 11. 17. 21:36

#. 대형병원 세팅에서만 환자를 봐 와서 그런지 아무 것도 없는 야생, 정글에 내던져진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의외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곱씹어 본다. 


#. 농촌 진료 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실제로는 이 행사의 의도가 어느 정도나 반영이 되고 있는 건지?... 아파도 병원에 자주 가기 힘든 환자들이 오는 게 아니라, 병원을 여기 저기 다니면서도 서울대병원에서 나온다니까, 약 리필 받으려고, 평소 궁금하던 것들 물어보려고, 왔다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적어도 오늘은. 


#. 생초진 환자에게 약을 시작하는 것이 이렇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나? 약을 쓰기 위해 검사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응급실이나 병실에서는 별 생각 없이 툭툭 날리던 오더인데...


#. 그리고 내 맞은 편에는, 순환기 주니어 스탭 선생님도 함께 진료를 보고 계시지. 덕분에 의지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 일천만배. 다른 과 선생님들은 진료 다들 잘 보시나벼...


#. 네스프레소 머신이 있어서 여섯 종류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건 좋았다. 커피 참 잘 마셨다. 같이 간 다른 분들이 내가 계속 커피 마시는 걸 보고 놀라더라는... 나에겐 그저 일할 때 마시는 음료수인 것을.


#. 식사 전후로 살짝 돌아다녀보니 의원도 두 군데나 있고 보건지소도 있던데, 농촌 진료가 주변 개업의들의 밥줄(?)을 뺏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 후 꼭 근처 병원 가시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서울대학교병원과 함께하는' 이란 타이틀을 걸고 있긴 하지만 이동 진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계가 있는데 굉장히 많은 걸 기대하고 오신 분들도 꽤 많았던 것 같다.


#. 내가 직접 들은 바는 아니지만, 찾아오신 분들과 말씀을 나눈 교수님에 따르면 마을 인근에는 내시경은 커녕 딱히 랩을 할 수 있는 곳도 없는 것 같다던데. 그런 설비를 가져다 놓아봐야 결국 '돈'이 안 되기 때문일까? 환자들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한계 비용이 아무래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보다 낮아서? 이런 무료 진료에 이틀 남짓한 기간동안 500여명 정도 찾아오신 걸 보면... 드는 생각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 진료 다녀온 동네 식당 음식이 전반적으로 짜고 맵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수님께 고혈압과 속쓰림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농을 쳤더니, 우리가 병원 음식에 익숙해져서 그렇다며. 하긴 나도 최근 몇 년간 의식적으로 싱겁게 먹어와서 이제는 딱히 소금간은 안 하는 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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