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Record

인생 역전을 꿈꾸던 3류 복서의 뻔한 실패 스토리.

Angelus 2011. 6. 29. 19:54
잡으러 들어가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락커룸.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황당하고 허무할 뿐이다. 어딘가가 너무나도 쓰라린 것이 맞아서 생긴 상처 때문인지, 아님 다른 이유인지.

하루 이틀이 지나고 맞은 상처는 웬만큼 아물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어딘가가 아프다. 음. 커피를 많이 마셔서 속이 쓰린건가. 술을 마셔서 머리가 아픈건지도 모르지. 잠을 잘 못자서 전반적으로 몸이 무겁긴 하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지난 시합을 복기해본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그리고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게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 경기, 시작부터 상대 페이스에 말려서 질질 끌려다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끝나버린 원사이드 게임이었다. 이미 승부는 결정되어 있었고, 가지고 놀다가 지겨워져서 한 방에 끝낸 거지.

내가 지쳐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8회까지만 버티면 승산이 있을 것 같다던, 상대를 오랫동안 알아왔고 이번 경기도 성사시켜준 프로모터의 능글맞은 면상이 떠오른다. 한 대 갈겨주고 싶지만, 그 녀석 잘못은 아니잖아.

계속해서 똑같은 패턴으로 당하는 걸 보면 분명히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데...패자를 돌아봐주는 승자는 없더란 말씀. 자꾸 이런 식으로 깨지기만 하니까 주변 사람들한테도 눈치가 너무 보이고 미안해진다. 조처럼 하얗게 불태우고 모든 것을 끝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이제는 친구 녀석의 말대로 인생 역전을 꿈꿀 것이 아니라 착실히 준비해서 어느 체육관의 트레이너 자리라도 잡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걸까. 아님 아예 조용히 은퇴하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게 좋을까.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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