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Fever Pitch

[갈무리] (2003, 2007) David Beckham 이적에 관한 글

Angelus 2011. 1. 1. 16:09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당시... 2003.여름)

그의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알게 된 때는 97년 프레월드컵이었다. 당시에는 앨런 시어러를 보느라 진면목을 볼 수 없었지만, 이듬해 프랑스 월드컵에서 나는 데이빗 베컴이 어떠한 선수인가를 알게 되었다. 콜롬비아전에서의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그의 실력을,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어처구니 없는 퇴장으로 그의 성질을.
그는 그 발길질 한 번에 잉글랜드 탈락의 원흉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잉글랜드의 두 골이 그의 발 끝으로부터 시작되었단 사실을.

98-99 시즌 마지막 경기 토튼햄과의 대결, 그의 환상적인 결승골 덕분에 맨유는 극적으로 아스날을 제치고 역전 우승할 수 있었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비록 스포츠뉴스를 통해 볼 수 있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 선수는 베컴이란 걸 알 수 있는 골이었고, 그 생각은 곧 현실이 되었다.

유로 2000 포르투갈전... 시작하자마자 오른쪽에서 올려준 크로스는 스콜스의 헤딩골로 이어졌다. 곧이어 오웬과 환상적으로 호흡을 맞추어 맥마나만의 골을 도왔고. 그러나 경기는 결국 3대2로 포르투갈의 승리... 패배 후 그는 야유하는 사람들을 향해 중지를 내밀었고... 그 후폭풍은 어휴... 

00-01 시즌,
홈에서 열린 아스날 전. 6대 1이란 결과도 결과지만, 그의 패스 실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던 경기였다. 오른쪽 사이드라인 부근에서 드리블하며 상대를 제친 뒤 그대로 전방을 향해 올려준 롱패스. 수십미터를 날아가서 수비보다 한 발 앞서 뛰어들어가는 요크의 발에 정확히 도착했고...골.

시티와의 더비 매치... 전반 시작하자마자 꽂아넣은 프리킥 골. 다양한 각도에서 리플레이를 보여주던 기억이 나는군. (골도 골이었지만 배치된 카메라의 수와 각도에 감탄했지결국 1대 0으로 끝났지만, 그 골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던 경기였다.

01-02 시즌...
잉글랜드 대표 베컴은 어땠던가. 시어러의 은퇴 이후 팔뚝에 붉은 완장을 찬 그는 위기의 잉글랜드호를 기적적으로 구해냈다. (물론 리버풀 3총사가 맹활약한 독일전이 결정타긴 했지만)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마지막 경기. 쉽게 이기리라던 예상을 뒤엎고 경기 내내 끌려다녔던... 독일과 핀란드의 경기는 득점없이 무승부로 종료된 상태, 주어진 시간은 다 지나고 주심이 경기 종료를 알리려는 찰나... 간신히 얻어낸 마지막 프리킥 찬스. 거리는 약 25m, 정중앙에서 약간 왼쪽.

'이 위치라면...???'
그리고 그대로 그리스 골문을 가르는 환상적인 골. 잉글랜드가 2002 월드컵에 직행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는 법. 국가대표는 승승장구였지만 소속팀은 10년만에 한 개의 우승컵도 차지하지 못하고 팀은 리그 3위로 추락하고 만다.
그리고 2002년 3월 데포르티보와의 경기... 나는 점심 시간에서야 그의 발목이 부러진 걸 알았다. 월드컵에서 그를 볼 수 없을 거란 생각때문에 거의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고 그 이후 하루종일 우울모드로 돌입했던 기억이 난다. (한 친구는 내 발목이 부러진 줄 알았다는...) 비록 기적적으로 월드컵에 맞춰 돌아오긴 했지만...

이번 시즌...
간신히 우승컵은 찾아왔지만 상처뿐인 영광이랄까. 축구화로 얻어맞질 않나, 레알 경기에선 선발에서조차 제외되고 교체로 간신히 투입되질 않나... (그나마 그 경기에서 가장 돋보인 맨유 선수가 그였다는 게 아이러니지...)
그리고, 결국 이렇게 레알 마드리드로 가버리는군.

부디 스페인에서도 성공하길 바란다. 실력 없고 과대포장된 선수란 일부의 혹평도 보란 듯이 떨쳐내고. 내가 레알을 응원하는 일은 없겠지만, 내가 안하더라도 수많은 팬들이 레알로 옮겨갈텐데 뭐...

그동안 안겨 주었던 멋진 추억에 감사하며. Thank you, David Beckham. Hasta la vista.



(LA 갤럭시로의 이적을 발표한 직후...2007.1)

그의 미래에 대한 수많은 루머와 예측이 난무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이루어지지 않길 바랐던 것이다. 베컴 자신은 '돈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다, 미국 축구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싶다'고 한다는데 사생활 측면에서 보자면야 베컴이나 빅토리아, 그리고 애들한테도 손해 볼 건 없겠지만 축구선수로서는...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에 오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지만 다른 잉글랜드 팀으로 이적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갈 길은 오직 해외뿐인데 당시 받아줄만한 팀은 스타선수 수입에 열을 올렸던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샤 정도밖에 없었고... (인터밀란도 열심이었지만 스트라이커 수집에 열을 올렸을 때니까)

알 스트라이커중에서 '위치 선정이 뛰어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라울... 정도일까. (이번 시즌에 들어온 루드는 빼고... 사실 루드가 있는데 베컴을 쓰지 않는 것도 의문이긴 하다) 그나마 라울도 최근 2-3년 좀 부진했으니 베컴이 아무리 양질의 크로스를 올려준다고 해도 이를 받아먹어줄 선수가 별로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라울이 받아먹기만 하는 선수라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받아먹어 줄만한 선수를 꼽자면 라울밖엔 없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

강력한 DM이 있었다면 베컴이 수비에 대한 큰 부담없이 자신의 장기를 맘껏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DM이 없으니까 베컴을 중앙으로 쓰면서도 공격보다는 오히려 수비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던가?... 뭐... 주저리주저리 얘기해봐야 별것도 아닌 팬의 어줍잖은 가정일 뿐이고 다 지나간 일이다.

어쨌든 다시 결론으로 돌아오자면, 
이제 베컴의 축구선수로서의 영광은 끝났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이점에 있어서 '사실상 반쯤 은퇴하는 것과 같지 않느냐'는 개리 리네커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남은 기간동안 레알에서 경기에 나서는 건 아주 드문 일일테고 MLS로 가면 이제 다시 지금 수준의 유럽 리그로, 그리고 국대로 복귀할 수도 없을테니. 유럽축구에 열을 올리던 시기에 최고의 스타였던 선수가 이렇게 쓸쓸하게 내려가는 걸 보니 그냥 좀 가슴이 아프다.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축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뜨겁게 달궈주었던 선수였는데.